크게 세 가지 상태의 섞임이었던 것 같습니다.
1. 메틸페니데이트 성분 약 설명서에
언제나 꼭 들어있는 내용인
'조증 유발 가능성' , 혹은 '조증 유병자의 악화 가능성'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
특유의 들뜬 기분, 고양감이 들었죠.
정도는 주변 지인들에게 먼저 연락을 돌린다던가
밀렸던 일을 한 번에 해치운다거나 하는 것부터
그간 해봐야지 했던 일에 도전하는 소박한 수준이어서 되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데
다만 일부 사례를 들어보면 정말 본격적인 조증 삽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감이 커져서
돌이킬 수 없는 큰 일을 시작하거나, 공격성이 증가해서 싸움을 건다거나
망상에 가까운 기분이 든다거나 하는 일도 드물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.
기간은 강하게 약하게를 포함해서 2~3개월 정도 갔던 것 같습니다.
2. 대표적인 부작용들의 발현
두통, 입마름, 불면, 소화불량, 식욕부진, 성기능장애 정도가
가볍게 있었는데 요건 금방 잡힌 편(일주일에서 한 달 사이)이거나 견딜만한 수준이었어요.
근데 불안, 초조 같은 증상이 좀 강했습니다.
당시 대학 재학 중이었는데 학기 초랑 너무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
몇 교수님께서 수업 도중에 학생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실 정도였거든요;;
솔직히 말씀드리고 적극적으로 교수님들도 양해해 주셔서 다행이었지만
아니었다면 정말 끔찍했을 시간이었습니다.
결과적으로 한 학기 이상 갔거든요.
물론 제 경우는 발견이 늦은 경우라
순수 ADHD상태라기 보다도 합병증 상태라서 더 이런 증상이 심한 편일 수 있다는 주치의 선생님 말씀도 있으셨고
일 년에 특정 시기에 우울삽화가 오는데 그 시기가 겹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만은...
그걸 감안해서 용량을 조절하고 다른 항불안, 우울 약들을 처방받으면서도
거의 반년 이상, 9개월 가깝게 시달렸던 굉장히 힘든 시기였습니다.
근데 지금은 그때보다 용량을 세 배 가깝게 증량해서 먹고 있는데도 안정적입니다.
결국은 지나가더라고요.
혹시 복약 초기에 이런 증상으로 고민하시는 분이 이 글을 보신다면
저를 일반화하긴 어렵겠지만 결국 지나간 사람도 있다는 후기로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.
3. '안 되던' 일들이 되는 경험
사실 정확하게는 안 되는지도 몰랐던,
스스로에게 있어서는 원래 그런 줄 알았던 행위들이 되는 경험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.
예를 들면 저는 책을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
제 독서방식은 위*피디아나 나*위키 보는 방법과 흡사했어요.
책을 한 권 붙잡고 보다가 흥미 있는 부분이 보이면 거기 관련된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고
다시 거기서 또 흥미가 생기는 내용이 나오면 다시 그걸 찾아보고
원래 보던 것들은 점점 쌓여서
시간이 지나면 물리적으로 보다가 그만둔 자료들이 책상 앞에 어수선하게 쌓인 채로 중단되는
그런 독서를 즐기곤 했는데
복약을 시작하고 책 한 권을 집중해서 완독하고
궁금한 내용은 메모해 두거나 중간에 찾아보더라도 다시 돌아와서 끝을 보는 독서가 가능해졌습니다.
시간으로도 한 번에 한 책을 10분도 채 못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가
몇 시간을 같은 책을 궁금한 내용 찾아보면서 읽는 것도 가능해졌고요.
또 건망증이 줄어든다거나, 반복적인 일들(출석, 단순하고 규칙적인 과제, 정기적인 일과) 같은 것들이 조금씩이나마 가능해졌어요.
이게 ADHD가 아닌 분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는데
'하기 귀찮다'랑 '아예 할 수 없다' 의 차이에 가깝습니다.
귀찮다는 그래도 어쩌다 의지나 여유가 생길 때 할 수가 있지만
못 하는 쪽은 평소에 하고 싶어도 스트레스만 무진장 받으면서 하질 못 합니다.
저도 당시엔 애써 안 하는 거라고 쿨한 척해봤지만
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어린이의 자기 방어 가까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... 그런 느낌이었습니다.
제가 이 증상을 인정하고 주변에 알리기 시작했을 때
정말 힘들었던 말이
제가 보기에 정말 규칙적이고 알찬 생활을 실천하고 있어서 좋아하던 친구들
(저는 제가 못 해서 그런 걸 해내는 친구들을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.)
가운데 몇 명이
"나도 그렇고 누구나 다 그래, 원래 그런 거야"라고 말할 때였어요.
위로를 해주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
거의 한 평생을 원래 그런 줄 알고 혼자 노력해도 안 되고, 안 되는 상황에 지쳐서
그렇게 거부감이 컸던 정신과 문을 두드린 후에
약을 먹고 나서야 그게 아니란 걸 느끼고
정말 노력으로 안 되던 일이 겨우 조금씩 되는 그런 상황이었는데
그게 마치 조금 더 노력하고 덜 노력하고의 차이라는 양 치부해버리는 그런 말이 너무 아팠습니다.
약간 다른 이야기가 너무 길어졌네요
여하튼 그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간증(?)과 도움을 대놓고 요청하기 시작할 정도로
큰 변화를 실감할 정도로 약물치료가 효과적이었습니다.
집안에 의사분들이 몇 계신데도 그분들부터 정신과에 대한 저항감이 있으셔서
인지행동치료나 뭐 다양한 심리학, 영양학, 운동이나 생활습관적인 접근은
진작 했었고 지금도 꾸준히 하는 편입니다만
(간단한 예시로 카카오톡도 매일 보는 시간을 정해서 봅니다. 잠도 밤 10시 전에 자고, 매일 운동하고요.)
약물치료의 효율성에 비하면 굉--------장히 회의적입니다.
안 하는 것 보다야 당연히 낫겠지만(그러니 저도 지금까지 하고 있고요.)
절대로 주된 치료의 방법이 될 순 없다고 생각해요.
그러니 저처럼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
빠른 조치로 구원받으시기 바랍니다
약멘!
그래서 이 글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세 줄 요약은
1. 저는 대표 사례가 아닙니다.(중요)
2. 존버 필승. 부작용은 언젠가 날아갑니다.
3. 약물치료 짱짱맨, 의심되면 병원 가세여 제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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